자동차를 현대문명의 총아라고 한다. 오늘은 승용차 말고 대중교통에서의 이야기. 헐레벌떡 타고 보니 마침 내가 선호하는 운전석 바로 뒷자리가 비어 있다. 첨단문명이 반짝거리는 버스 안. 같은 버스에서도 자리마다 조금씩 바깥 풍경이 달라진다. 내 가까운 이는 나른한 오후 흔들리는 버스에서 느긋이 듣는 나훈아 트로트가 그리도 좋다고 한다.
오늘은 비가 조금 왔다. 어라, 앉고 보니 버스 타면 항상 확인하는 기물인 우산과 삽이 동창생처럼 반갑게 꽂혀 있지 않겠는가. 물음표처럼 거꾸로 꽂힌 우산만 해도 보통은 아니지만 오늘은 삽에 집중하자. 검은 고무줄로 칭칭 감긴 삽은 아주 오래된 문명이다. 지난 내 일생에서 만난 물건들을 분류해보면 감씨앗 속 씨눈, 숟가락, 앞니, 삽은 한통속으로 묶일 수 있겠다. 생김새가 매우 서로 닮았다. 나중 나 어디로 떠날 때 흙 흠뻑 떠 고봉처럼 무덤 만든 뒤 마지막으로 토닥토닥 등 두드려주는 이도 바로 이 삽 아니겠는가.
초등학교 3학년, 부산으로 전학 가는 날. 고향에서 새벽밥 먹고 길을 나섰지. 첫차 타고 거창읍 차부로 갈 때 외양간의 소와 송아지도 깨어나 나를 무연히 바라보았지. 김종삼의 시 ‘묵화’를 읽을 때면 언제나 그날이 떠오른다. 실제로 하루 종일 울퉁불퉁 자갈길을 달려 저무는 부산 교통부 앞에 내리면 고무신 위로 발잔등이 불룩 부어올랐지. 그때 검은 선글라스의 운전수는 무척 부러운 아저씨. 앞자리에 앉아 빠르게 지나치는 풍경을 보다가 건너편에서 거창으로 또 돌아가는 천일여객 버스와 마주치면 여유 있게 손 들어 인사를 주고받던 동작이 왜 그리 멋있었던가.
무료충전 바다이야기
오늘 저녁 그 광경을 보았다. 삽에 대한 상념에 이래저래 젖는데 운전수께서 왼손을 조그맣게 펴서 건너편 종.으로 돌아가는 버스에 신호하지 않겠는가. 그 작은 손이 어쩌면 그리도 꽃삽 같은가. 한마디 더 얹을 이야기가 있다. 어젯밤 나는 손삽이라는 말을 처음 접했다. “꽃은 좋지만 꽃그늘은 꽃보다 더 애잔해서 흙을 파는 도구를 막무가내로 꽃삽이라고 부르기에는 내 마음속이 조금은 어지러웠다. 그래서 손삽으로 불렀다.”(<아는 사람 집>, 허수경) 그 꽃삽 아니 손삽의 목격이 내 안의 기억들을 불러내어 이 작은 글을 완성시켜 주었다.
이갑수 궁리출판 대표
tyle="colo